류경수 / 사진=텐아시아DB
류경수 / 사진=텐아시아DB
"눈치 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쫄면 안 되겠다는 느낌과는 좀 달라요. 내가 어떤 연기를 했을 때 '선배님이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감독님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지르고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조훈이 이 안에서 어우러질 것 같았어요."

영화 '야당'에서 빌런 조훈을 연기한 배우 류경수는 이같이 말했다. '야당'은 마약 수사기관의 브로커인 야당과 검사, 형사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마약 수사에 뛰어드는 범죄 액션 영화. 류경수는 대통령 후보자의 안하무인 아들 조훈 역을 맡았다. 조훈은 일상처럼 마약 파티를 열지만, 아버지가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탓에 아무리 사고를 쳐도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다.

"조훈은 캐릭터 설정만으로는 전형적 타입이라서 비틀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악당 말고 악동 느낌으로, 갑자기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느낌이 재밌겠다 싶었죠. 의외성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요. 조훈에게 장난기가 없으면 조훈은 기능적인 캐릭터로 끝났을 것 같아요.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에서 성장이 멈춰 유아적 발상을 하는 인물로 그렸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쁜 장면을 연기하면 더 다채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야당' 스틸. /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이브미디어코프
'야당' 스틸. /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이브미디어코프
류경수는 이번 영화에서는 검사 구관희(유해진 분)까지도 업신여기는 조훈을, 영화 '인질'에서는 톱배우 황정민(황정민 분) 납치사건에 가담하는 인질범 조직 2인자 염동훈을 연기했다. 선배들 기강을 제대로 잡았다는 반응에 류경수는 "선배들을 때린 건 없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류경수는 유해진이 애드리브로 욕설한 장면이 비하인드도 들려줬다.

"잘못 들었나 싶었어요. 하하. 저도 거기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했어요. 내 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러면 당황하거나 무서워할 것 같았죠. 좀 비틀어보려고 했어요. 의외의 대사가 나오면 관객들도 재밌지 않을까요."
류경수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
류경수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
'야당'은 유력 정치인이 나오고 부정부패가 소재가 된다는 점 등에서 영화 '내부자들', '검사외전', '베테랑'도 연상시킨다. 특히 조훈 캐릭터는 '베테랑'에 속 유아인이 연기한 빌런 조태오와 기득권층 2세라는 점, 안하무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조태오는 역대급 빌런으로 꼽힐 만큼 관객들에게 각인된 악역 캐릭터다. 하지만 류경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조태오 캐릭터와 같이 언급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하하. 저도 '베테랑'을 재밌게 봤어요. 하지만 굳이 캐릭터를 겹치게 하려고는 안 했어요. '야당' 안에서 잘하려고 노력했죠."
'야당' 캐릭터 포스터. /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이브미디어코프
'야당' 캐릭터 포스터. /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이브미디어코프
류경수는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2019)에서 친일파 캐릭터를 연기하며 냉철함 속에 흔들리는 감정을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2020)에서는 거친 말투와 상반되는 훈훈한 모습으로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SF영화 '정이'에서는 야망에 찬 연구소장이라는 악역으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류경수는 이처럼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왔다.

"구울 수도 삶을 수도 있는 캐릭터가 끌려요. 재밌게 요리해볼 수 있고 좋은 재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에 관심이 가요.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쪽에 매력을 느끼죠. 매번 '저렇게 해볼 걸 그랬나' 싶어요. 촬영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그런 생각이 나요. 순간순간 할 때마다 최선만 다하자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류경수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
류경수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
일상적인 캐릭터는 어떠냐는 물음에 류경수는 "예전에는 확확 바뀌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관객들, 시청자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않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지금은 '미지의 서울'이라고 조금 일상적인 작품을 찍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냐는 질문에는 "자료가 남아있는 근현대사 실존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조선시대 인물은 기록이 글밖에 없지 않나. 육성, 영상 등이 남아있는 실존 인물을 표현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사'자 들어가는 인물도 연기해보고 싶다. 변호사, 판사, 의사 등등 재밌을 것 같다. 치과의사도 좋다"며 웃었다.

2007년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로 데뷔한 류경수는 어느덧 데뷔 20주년에 다다르고 있다. "오래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직업상 나의 20대, 30대 모습이 자료로 남잖아요. 청춘일 때 나, 중년일 때 나를 볼 수 있어요.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청춘일 때 내 모습으로도 최대한 많이 해보고 싶어요. 나중에 그걸 보면 마음이 이상할 것 같아요. 70~80대가 됐을 때는 남겨놓았던 할아버지 역할도 하며, 쭉 한번 훑으면 진짜 성공한 배우이지 않을까요. 하하."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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